에도 고학(古學)과 이제마의 사상의학 — '자연에서 작위로'의 유학적 전환이 동아시아 의학에 남긴 것
1. 핵심 요약 (Abstract)
에도시대(1603–1868) 일본에서는 유학의 고학파(古學派)와 의학의 고방파(古方派)가 거의 동시에, 구조적으로 평행한 지적 운동을 전개했다. 유학에서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가 주자학의 이기론적 주석 체계를 걷어내고 공맹의 원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시기에, 의학에서 요시마스 토도(吉益東洞, 1702–1773)는 금원사대가의 음양오행론적 이론의학을 배척하고 장중경(張仲景)의 『상한론(傷寒論)』 원전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는 『일본정치사상사연구』(통나무, 1995)에서 이 전환을 ‘자연에서 작위로’라는 틀로 분석하며, 에도 유학 내부에서 근대적 사유의 맹아가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에도의 이 두 운동 — 유학의 고학과 의학의 고방 — 은 같은 지적 풍토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각각의 전문 영역 안에서 독립적으로 전개되었다. 유학자 소라이는 유학의 영역에서, 의학자 동동은 의학의 영역에서 주자학적 세계관을 해체했으며, 이것은 근대적 전문 분화의 자연스러운 경로였다. 이 지점에서 조선 말기의 이제마(李濟馬, 1837–1900)와의 대비가 주목된다. 이제마는 격치고(格致藁)에서 성리학적 인간론을 독자적으로 재구성하고,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그것을 체질의학 체계로 구현함으로써, 유학과 의학을 한 사람의 사유 안에서 관통시켰다. 전문 분화가 정상적 경로라면, 이제마의 재관통은 조선이라는 특수한 지적 풍토에서 나온 예외적 경로이다. 본 연구는 마루야마의 ‘자연/작위’ 분석틀을 의학사에 확장 적용하여, 에도 고학파·고방파·이제마 사상의학의 3축 비교를 시도한다.
2. 질문의 맥락 (Introduction)
주자학(朱子學)은 단순한 철학 유파가 아니었다. 자연·사회·인체를 하나의 이(理)로 관통하는 통합 세계관이었다. 하늘의 이치(天理)가 인간의 성(性)이 되고, 인간의 성이 오장육부의 기능으로 구현된다는 주자학적 체계 안에서는, 유학과 의학이 하나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공유했다. 음양오행론은 이 통합 세계관의 공용어였다.
따라서 주자학 체계에 균열이 생기면, 유학과 의학은 동시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에도시대 일본에서 정확히 이 일이 벌어졌다. 17세기 후반–18세기에 걸쳐, 유학에서는 이토 진사이(伊藤仁斎, 1627–1705)와 오규 소라이가 주자학적 주석 전통을 거부하고 공맹의 원전으로 직접 돌아가는 고학(古學) 운동을 전개했다. 의학에서는 고토 곤잔(後藤艮山, 1659–1733), 야마와키 도요(山脇東洋, 1705–1762), 요시마스 토도가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 계열의 이론의학을 배척하고 장중경의 상한론으로 복귀하는 고방(古方) 운동을 전개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1940–1944년에 걸쳐 발표한 세 편의 논문(훗날 『일본정치사상사연구』로 묶임)에서, 소라이의 고학을 주자학의 ‘자연적 질서관’에서 ‘작위적 제도관’으로의 전환으로 분석했다. 주자학에서 사회질서는 천리(天理)에 근거한 자연적인 것이지만, 소라이에게 제도는 선왕(先王)이 인위적으로 만든(作爲) 것이다. 마루야마는 이 전환에서 서양 근대성의 맹아에 비견될 수 있는 자생적 근대 의식의 형성을 읽어냈다.
마루야마의 분석은 정치사상사에 한정되었다. 그가 다루지 않은 것은, 같은 시기 같은 지적 풍토에서 의학의 고방파가 동형(同型)의 전환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병렬 구조를 인식하고, 나아가 조선의 이제마가 유학과 의학을 한 사람의 사유 안에서 관통시켰다는 사실까지 시야에 넣으면, 동아시아 의학 사상사의 새로운 지도가 그려진다.
임상의사가 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지식이 아니다. “왜 한의학에는 서로 다른 치료 패러다임이 공존하는가”, “체질의학은 어떤 사상적 토양에서 나왔는가”, “이론의학과 실증의학의 긴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상사적 답변이다.
3. 문헌이 말하는 것 (Results)
1. 마루야마 마사오의 ‘자연/작위’ 틀 — 에도 유학의 구조적 전환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정치사상사연구』의 세 논문에서, 에도시대 유학의 전개를 ‘자연(自然)‘에서 ‘작위(作爲)‘로의 전환으로 분석한다.
주자학 체계에서 사회질서는 ‘자연적 질서’에 속한다. 천리(天理)가 인간의 성(性)으로 내재하고, 그 성이 발현되면 인륜·제도·사회질서가 형성된다. 이 구도에서 제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천리)이 스스로 드러난 것이다. 마루야마의 표현에 따르면, 주자학에서는 “자연적인 것과 규범적인 것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규 소라이는 이 체계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소라이에게 선왕의 도(先王之道)는 천리의 자연적 발현이 아니라, 선왕이라는 구체적 인격이 특정 상황에서 인위적으로(作爲) 만든 제도이다. “도란 선왕이 만든 것이지, 자연의 이치가 아니다"라는 소라이의 선언은,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자연과 규범을 하나로 묶어주던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
마루야마는 이 전환의 의의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제도가 인위적인 것이 되면 제도는 변경·개혁의 대상이 된다. 둘째, 정치가 도덕과 분리되어 독자적 영역으로 자립한다. 셋째, 개인의 내면(도덕적 자기수양)과 외부의 제도(경세제민)가 구분된다.
2. 고방파(古方派) 의학 — 같은 전환의 의학적 전개
고방파 의학의 전개는 고학파 유학과 구조적으로 평행하다. 고방파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후세방(後世方)’ — 마나세 도산(曲直瀬道三, 1507–1594)이 중국의 금원사대가(유완소·장종정·이고·주진형)로부터 수입한 이론의학이다. 후세방은 음양오행론과 장부론을 정교한 이론 체계로 발전시켜, 환자의 증상을 이론적 틀에 맞춰 해석하고 처방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의학에서의 ‘주자학’에 해당한다 — 자연적 질서(음양오행)라는 형이상학적 틀이 임상의 전 과정을 지배하는 체계이다.
고방파의 네 거두 — 고토 곤잔, 가가와 슈안(香川修庵), 야마와키 도요, 요시마스 토도 — 는 이 이론의학을 사변적 관념론이라 비판하고, 장중경의 『상한론』『금궤요략』이라는 고전 원전으로 직접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유학에서 진사이·소라이가 주자의 주석을 걷어내고 공맹의 원전으로 돌아간 것과 같은 구조의 운동이다.
최근 학술 논문은 이 연결을 직접적으로 논증한다. 고방파 의사들은 고학파 유학자들의 방법론을 직접적으로 수용했다. 야마와키 도요와 요시마스 토도는 소라이의 고문사학(古文辭學)적 연구 방법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고토 곤잔은 이토 진사이의 유학을 높이 평가했다. 가가와 슈안은 이토 진사이 문하에서 직접 유학을 배운 뒤 “유의일본론(儒醫一本論)” — 유학과 의학은 하나의 뿌리라는 주장 — 을 내세웠다. 이는 일본에서 유학과 의학의 연결이 시도된 드문 사례이지만, 체계적인 의학 이론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토도가 소라이의 방법론을 의학에 적용한 증거는 구체적이다. 토도는 소라이의 제자 야마가타 슈난(山県周南, 1687–1752)과 서신을 교환하며 고문사학적 텍스트 분석법을 습득했고, 이를 상한론 연구에 직접 적용했다. 그의 저서 『보정집광상한론(補正輯光傷寒論)』에서는 ‘음(陰)·양(陽)·허(虛)·실(實)·한(寒)·온(溫)’ 같은 형이상학적 한자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 또한 자신의 복고적 의학 사상의 정당성을 논증하기 위해 『여씨춘추』『주례』『순자』 등 37권의 중국 고전을 인용한 『고서의언(古書醫言)』을 저술했다.
요시마스 토도에게서 ‘자연에서 작위로’의 전환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첫째, 음양오행의 배척. 토도는 상한론 속의 음양오행설조차 후세의 찬입(竄入)으로 보고 관념론으로 배척했다. 소라이가 논어 속에서 주자의 주석을 걷어낸 것과 같은 원전 비판이다.
둘째, 만병일독설(萬病一毒說). 토도는 “만병은 오직 하나의 독(毒)이며, 약은 모두 독물이다. 독으로 독을 공격하면 독이 거하여 몸이 회복된다”(萬病唯一毒 衆藥皆毒物也 毒以攻毒 毒去體佳)고 선언했다. 음양오행이라는 복잡한 자연적 분류 체계를 하나의 원리(毒)로 환원한 것이다.
셋째, 복진(腹診)의 체계화. 토도는 이론적 사변이 아닌 환자의 복부를 직접 촉진하여 진단하는 복진법을 체계화했다. 이 경험적·실증적 방법론은, 소라이가 도덕적 자기수양(내면) 대신 제도(외부)에 주목한 것과 구조적으로 대응한다 — 이론적 내면의 탐구에서 경험적 외부의 관찰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3. 이제마(李濟馬) — 유학과 의학이 한 사람의 사유 안에서 만난 사례
에도에서 유학의 고학과 의학의 고방이 각각의 전문 영역 안에서 독립적으로 전개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라이는 유학자였고 동동은 의사였다. 과거제도가 없던 에도에서 유학과 의학은 제도적으로 분리된 전문 영역이었으므로, 양쪽이 각자의 길을 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가가와 슈안의 “유의일본론"이 유일한 예외적 시도였으나, 이것은 선언에 그쳤을 뿐 유학적 인간론이 의학적 체질론이나 처방 체계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마가 주목되는 것은, 그의 사유 안에서 유학과 의학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격치고(格致藁)는 유학 저작이고 동의수세보원은 의학 저작인데, 이제마에게 이 둘은 별개의 학문이 아니었다.
격치고에서 이제마는 성리학의 개념들을 계승하되 독자적으로 변형한다. 지행론(知行論)에서 “마음으로써 알고(心以知之), 몸으로써 행한다(身以行之)“는 구도를 세우고, 이를 대지(大知)·소지(小知)·대행(大行)·소행(小行)으로 분화시킨다. 사물(事物)·사신(事身)·사심(事心)·사사(事事)의 배속론에서는 “물(物)은 신(身)의 집이고, 신은 심(心)의 집이고, 심은 사(事)의 집"이라는 독자적 인간 구조론을 제시한다.
이 유학적 인간론은 동의수세보원의 성명론(性命論)·사단론(四端論)에서 직접 체질의학의 기초가 된다. 맹자의 사단(四端) —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 — 을 네 체질의 성정(性情)적 특성으로 재배치하고, 이 성정의 편차가 장부의 기능적 편차(대소)로 구현되며, 이것이 곧 체질별 병리와 처방의 근거가 된다.
사상심학(四象心學) 연구에 따르면,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유철학을 근간으로 창안된 새로운 학문"이며, “형이상학적 철학이론에서 형이하학적 의학실천까지 이어진 통합적 체계"이다. 기존 한의학이 ‘자연 대 사람’의 관점에서 도교적 자연조화 사상의 영향 아래 있었다면, 사상의학은 ‘사람 대 사람’ — 인간 개개인의 타고난 정신세계의 편차에 주목하여 유교적 심신 수양론을 융합한 것이다. “동의수세보원은 체질을 구분하여 치료하는 의료적 측면 이전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도리’를 다룬 책"이라는 해석은, 이제마에게 의학이 단순한 기술(技術)이 아니라 유학적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실천이었음을 보여준다.
4. 세 축의 구조적 비교 — 주자학 해체의 세 가지 경로
| 비교 축 | 유학 고학파 (오규 소라이) | 의학 고방파 (요시마스 토도) | 이제마 (격치고 + 동의수세보원) |
|---|---|---|---|
| 시대 | 1666–1728 (에도 중기) | 1702–1773 (에도 중기) | 1837–1900 (조선 말기) |
| 해체 대상 | 주자학적 이기론·격물치지 해석 | 후세방 — 금원사대가의 음양오행론적 이론의학 | 기존 한의학의 도교적 자연관·음양오행 중심 체계 |
| 원전 회귀 | 공맹(孔孟)의 원전, 선왕의 도 | 장중경의 상한론·금궤요략 | 맹자(孟子)의 사단론 + 장중경적 실증 정신 |
| 배척한 것 | 주자의 이기론적 주석 전통 | 음양오행설 (상한론 속 찬입도 배척) | 음양오행 중심의 장부론, 도교적 자연관 |
| 방법론적 전환 | 자연(天理) → 작위(先王의 제도) | 이론(음양오행) → 실증(복진·약징) | 자연(도교) → 성정(유학적 인간론) |
| 핵심 원리 | 선왕의 도는 인위적 제도 | 만병일독설 — 독(毒) 하나로 환원 | 사상(四象) — 성정의 편차로 체질 구분 |
| 유학-의학 관계 | 유학만 다룸 | 의학만 다룸 (유학 방법론은 간접 수용) | 유학과 의학을 한 사람의 사유로 관통 |
| 대표 저작 | 변도(辯道), 변명(辯名) | 류취방(類聚方), 약징(藥徵) | 격치고(格致藁),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
5. 전문 분화와 재관통 — 두 사회의 지적 풍토 차이
유학자가 유학을 하고 의사가 의학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소라이와 동동이 각각의 전문 영역에서 주자학 체계를 해체한 것은 자연스러운 전문 분화의 과정이다. 에도시대 일본에서 유학은 무사 계급의 교양이었고, 의학은 의가(醫家)의 직업적 전문 기술이었다. 소라이의 겐엔주쿠(蘐園塾)에서 배운 것은 고문사학이지 의학이 아니었고, 동동이 교토에서 연 것은 의원이지 유학 학당이 아니었다. 이것이 근대적 전문 분화의 정상적 경로이다.
이제마 쪽이 특이하다. 조선에서는 유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 교양이었고, 사대부가 의서를 읽고 의학적 견해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제마는 함흥의 유학적 환경에서 자랐고, 격치고에서 보듯 성리학적 사유를 깊이 체화한 유학자이면서 동시에 임상 의학을 실천한 의사였다. 유학자가 의학 저작을 쓰고, 그 의학 저작의 기초 원리가 유학적 인간론(성정론·사단론)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에도의 맥락에서는 일어나기 어렵지만 조선의 맥락에서는 허준(許浚) 이래로 가능한 일이었다.
소라이는 유학을 정치·제도의 학문으로 전문화했고, 동동은 의학을 실증·경험의 학문으로 전문화했다. 이제마는 이와 다른 방향으로, 주자학을 해체한 자리에 사단(四端)이라는 맹자적 인간론을 놓고, 이것을 장부론·병리론·처방론까지 관통하는 원리로 삼았다. 소라이·동동의 전문 분화가 정상적 경로라면, 이제마의 재관통은 조선이라는 특수한 지적 풍토에서 나온 예외적 경로이다.
6. 100년의 시차와 정약용
소라이(1666–1728)·동동(1702–1773)과 이제마(1837–1900) 사이에는 약 100년의 시간적 갭이 있다. 이제마가 에도 고학파·고방파를 직접 읽었다는 기록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에도 고학파의 사유가 조선에 전혀 도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소라이학을 직접 읽고 비판적으로 수용한 사실이 확인된다. 소라이의 대표저서 『논어징(論語徵)』은 1763년 일본 통신사 조엄(趙曮)을 통해 조선에 전래되었고, 서기 원중엄은 『오규 소라이 문집』을 직접 가져왔다. 정약용은 소라이의 제자 다자이 슌다이(太宰春臺)의 『논어고훈외전(論語古訓外傳)』을 통해 소라이학을 접했다. 처음에는 ‘괴이한 논설’로 여겼으나, 깊이 탐독한 후 ‘찬란하다(燦然)‘고 평가를 바꾸었다. 정약용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이토 진사이를 3개소, 오규 소라이를 50개소, 다자이 슌다이를 148개소 인용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정약용 자신의 평가가 남아 있다. “일본에는 과거 제도의 폐단이 없었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학문이 우리나라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내가 그들이 이르는바 고학 선생인 이토 씨의 글과 오규 선생, 다자이 쥰 등이 논한 경전 해석을 읽어 보니 모두가 그 수준이 찬연(燦然)하였다."(여유당전서 권21, 시이아)
그러나 정약용과 이제마를 인과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제마는 정약용의 탈주자학적 경학을 계승한 사람이 아니다. 격치고는 성리학의 개념들을 쓰되 자기 방식으로 완전히 재구성한 독자적 철학 저작이며, 정약용의 고학적 경서 해석과는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이다: 에도 고학파의 탈주자학적 경전 해석이 1763년 이후 조선에도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마가 100년 후에 주자학적 음양오행 체계를 재편한 독자적 작업을 수행했다는 사실. 이 둘 사이의 직접적 영향 관계 여부는 열린 질문이다.
4. 교차 읽기 (Discussion)
같은 전환, 다른 변형
‘자연에서 작위로’의 전환은 동아시아에서 주자학 체계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주자학의 자연적 질서관이 더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할 때, 그 체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원리를 세우는 작업이 시작된다. 에도의 소라이·동동과 조선의 이제마 모두 이 전환을 수행했다. 다른 것은 전환의 방식이다.
일본식 변형은 전문 분화이다. 소라이는 유학 안에서 도덕을 정치로부터 분리하고, 제도(예악형정)를 선왕이 만든 작위적인 것으로 재정의했다. 동동은 의학 안에서 음양오행의 이론적 사변을 걷어내고, 복진과 약징이라는 경험적·실증적 방법으로 전환했다. 각자의 전문 영역 안에서 자연관을 해체하고 경험적 방법론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근대적 전문 분화의 경로이다.
이제마식 변형은 이와 다르다. 이제마는 자연적 질서관을 해체하되, 전문 분화가 아니라 성정(性情)이라는 인간 내면의 원리로 유학과 의학을 관통시켰다. 인간의 타고난 성정적 편차라는 사실(fact)에 기반하되, 그것을 수양을 통해 교정해야 할 과제(norm)로 동시에 설정하는 것이다. 전문 분화가 아닌, 유학적 인간론으로 의학을 재관통하는 특이한 경로이다.
비교표: 같은 전환의 세 가지 변형
| 구분 | 소라이 (유학 고학파) | 동동 (의학 고방파) | 이제마 (사상의학) |
|---|---|---|---|
| 해체 대상 | 주자학적 이기론 | 음양오행론적 이론의학 | 도교적 자연관 + 음양오행 중심 체계 |
| 대체 원리 | 선왕의 작위(制度) | 독(毒) + 신체 실증(腹診·藥徵) | 성정(性情)의 편차 + 체형기상·신독 |
| 실증의 방향 | 제도·예악형정(외부) | 신체(身) — 복부 촉진, 증상-처방 대응 | 사람(人) 전체 — 성정 관찰, 사심 교정 |
| 변형 방식 | 전문 분화 | 전문 분화 | 재관통 |
| 경로의 성격 | 정상적 전문 분화 | 정상적 전문 분화 | 특이한 재관통 |
같은 원전, 다른 귀결
동동과 이제마가 모두 장중경의 상한론을 중요한 참조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동동은 상한론의 조문에서 방증대응(方證對應) — 증상(證)과 처방(方)의 직접적 대응 — 을 추출하여 『약징(藥徵)』을 저술했다.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에서 상한론의 처방들을 체질별로 재분류하여 세 부류로 나누었다.
같은 원전에서 출발하면서 전혀 다른 처방 체계를 만든 것이다. 동동은 체질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증(證)‘만으로 처방을 결정하는 보편적 방법론을 추구했고, 이제마는 동일한 증상이라도 체질에 따라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는 개체적 방법론을 수립했다.
이제마의 방법론이 실증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동의 실증이 신체(身)를 대상으로 한 것 — 복부를 촉진하고 증상과 처방을 대응시키는 것 — 이라면, 이제마의 실증은 사람(人)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체형기상(體形氣象)을 관찰하여 체질을 구별하고, 사심(邪心)을 억제하기 위해 신독(愼獨)하고 독행(獨行)하는 구체적 행동 방법론을 제시한다. 동동의 실증이 증상과 약물의 대응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이제마의 실증은 성정 교정과 처방을 결합하는 것이다.
방법론적 강박과 자유
이 두 변형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 소라이학이라는 방법론적 틀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동동은 소라이의 고문사학을 충실하게 수용했다. 고문사학의 핵심은 “후세의 주석을 걷어내고 원전의 원래 언어로 돌아가라"는 것인데, 동동은 이 원칙을 의학에 엄격하게 적용했다. 상한론에서 음·양·허·실 글자를 삭제하고, 금원사대가의 이론을 배척하고, 오직 장중경의 원문과 임상 경험만을 인정하는 태도는, 소라이학의 방법론적 엄격함을 의학에 이식한 결과이다. 이것은 강력한 실증주의를 낳았지만, 동시에 의학을 ‘원전 텍스트 + 신체 경험’이라는 범위 안에 한정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유학적 인간론이 의학과 만날 여지는 이 틀 안에서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이제마에게는 이러한 방법론적 틀이 없다. 성리학의 개념도 쓰고, 맹자의 사단도 쓰고, 장중경의 상한론도 참조하되, 어느 하나의 방법론에 종속되지 않는다. “원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복고적 원칙 자체가 없고, 자신의 사유에 필요한 것을 자유롭게 가져다 쓴다. 격치고에서 성리학 용어를 쓰면서도 주자학적 이기론과는 전혀 다른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 자유로움이 유학의 인간론과 의학의 체질론 사이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게 한 조건이다.
틀이 있으면 그 안에서 날카로워지지만 틀 밖으로 나가기 어렵고, 틀이 없으면 확산될 위험이 있지만 영역을 넘어설 수 있다.
소라이학적 원전 회귀의 강박이 낳은 결과는 의학보다 유학 쪽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났다. 소라이가 “공맹의 원전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국학파(國學派)의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한 발 더 나아가 “공맹 자체가 외래 사상이니, 일본 고유의 원전인 고사기(古事記)·만엽집(萬葉集)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오래된 것이 더 진짜"라는 원전 회귀의 논리를 끝까지 밀면, 신도(神道)라는 신화적 영역으로 회귀하게 된다. 국학파가 실제로 그 길을 갔다. 원전 회귀라는 방법론 자체에 내장된 구조적 위험이다.
동동의 고방파 의학도 같은 원전 회귀의 논리를 따랐지만, 의학에는 “환자가 낫는가"라는 경험적 검증이 있으므로 신화로 빠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학을 ‘원전 텍스트 + 신체 경험’이라는 범위 안에 한정한 것은 동일한 방법론적 엄격함의 결과이다.
이제마는 이 구도 자체의 바깥에 있다. 원전 회귀의 원칙이 없으므로 “더 오래된 것이 더 진짜"라는 논리에 이끌려 신화나 특정 텍스트에 매이는 일이 없다. 성리학 개념도 쓰고 맹자도 쓰고 장중경도 참조하되,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유학과 의학을 관통하는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5. 아직 모르는 것 (Limitations & Future)
본 연구는 사상사적 비교라는 성격상, 각 인물의 저작에 대한 1차 문헌 분석보다는 기존 연구의 교차 종합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다. 특히 다음의 근거 공백이 존재한다.
첫째, 소라이와 동동 사이의 직접적 영향 관계에 대한 실증적 증거가 제한적이다. 동동이 소라이의 저작을 직접 읽었는지, 호리 케이잔(堀景山)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서지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이제마가 에도시대 일본의 고학파·고방파를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제마의 지적 계보에서 일본 의학의 영향 여부는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셋째, 마루야마의 ‘자연/작위’ 틀을 의학사에 적용하는 것의 방법론적 정당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치사상의 분석 틀을 의학사에 직접 전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개념적 비약의 위험이 있다.
추가 연구 질문
- 동동의 만병일독설과 이제마의 사상 병리론은 환원주의의 서로 다른 형태인가, 아니면 질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유인가.
- 에도 고방파의 복진(腹診)과 사상의학의 체형기상(體形氣象) 진단은, 경험적 관찰 방법론으로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를 갖는가.
-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고방파 전통이 ‘근대 캄포(漢方)‘로 변형되는 과정과, 20세기 한국에서 사상의학이 제도화되는 과정 사이에 비교 가능한 구조가 있는가.
- 조선의 지적 풍토에서 유학과 의학의 관통이 이제마만의 고유한 성취인가, 아니면 허준(許浚) 등의 선행 전통과 연결되는 계보가 있는가.
- 소라이학적 원전 회귀의 방법론이 국학파의 신도 회귀를 구조적으로 초래했다면, 동동의 고방파가 같은 구조적 위험을 피할 수 있었던 조건은 무엇인가.
6. 원전 인용 카드 (References)
Source 1 [정치사상사]
- Source: 『일본정치사상사연구(日本政治思想史研究)』
- Author/Era: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52 (원저) / 1995 (한국어 번역, 통나무)
- 역자: 김석근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에도 유학에서 주자학의 ‘자연적 질서관’이 소라이의 ‘작위적 제도관’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분석. 이 전환에서 일본 근대 의식의 자생적 형성을 읽어냄.
Source 2 [의학사-JP]
- Source: 吉益東洞 Wikipedia 일본어판 및 관련 학술 자료
- Author/Year: 吉益東洞(1702–1773), 『藥徵』(1771 자서, 1785 간행), 『類聚方』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고방파 대표 의가. 상한론의 음양오행설을 후세 찬입으로 배척. 만병일독설(萬病一毒說) 제창. 복진(腹診) 체계화. 문도 546명.
Source 3 [의학사-학술논문]
- Source: “Rethinking Ancient Learning: The Japanese Kohō School and Medical Knowledge Exchange in Early Modern East Asia”
- Author/Year: Xiang JJ, Chinese Medicine and Culture, 2025;8(2):181-191
- Access: journals.lww.com/cmc/fulltext/2025/06000/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고방파 의사(곤잔, 슈안, 도요, 토도)가 고학파 유학자(진사이, 소라이)의 방법론을 직접 수용했음을 논증.
Source 4 [사상의학]
- Source: 격치고(格致藁) — DJD_SASANG_RAG_MCP 동무저작집 코퍼스
- Author/Era: 이제마(李濟馬), 19세기 후반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유학적 지행론·대소지행론. 사물·사신·사심·사사 배속론. 맹자의 사단을 의학적 체질론의 기초로 재구성.
Source 5 [사상의학-해석]
- Source: 사상심학(四象心學) — DJD_SASANG_RAG_MCP 사상심학 코퍼스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사상의학은 “유철학을 근간으로 창안된 새로운 학문"이며 “형이상학적 철학이론에서 형이하학적 의학실천까지 이어진 통합적 체계”.
Source 6 [Kampo 역사]
- Source: History of Kampo and Chinese Medicine (kampo.ca)
- Reliability: medium
- Key point: 고세방(Goseiha)과 고방파(Kohoha)의 분화 과정. 동동의 실증적 캄포 접근과 복진 체계화.
Source 7 [비교의학]
- Source: 『다이나믹 상한론』 (KM Supplies)
- Reliability: medium
- Key point: 동동의 증치의학과 이제마의 사상체질이론이 근대적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상통하는 구조를 가짐.
Source 8 [유학사상사-비교]
- Source: 「오규 소라이와 다산 정약용의 실학관 비교」
- Author/Year: 이용수, 2011, 『한국실학연구』 22호, pp.109-145
- Access: KCI (ART001614762)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소라이와 정약용 모두 반주자학적 태도로 고학의 본의에 접근. 소라이는 도(道)를 선왕이 ‘제작’한 것으로 해석.
Source 9 [유학사상사-인성론]
- Source: 「오규 소라이·다자이 슌다이와 정약용 인성론의 비교」
- Author/Year: 백민정,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Access: s-space.snu.ac.kr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정약용이 『논어고금주』 집필 시 슌다이의 『논어고훈외전』을 참고. 소라이·슌다이의 성삼품설에 대한 비판적 수용.
Source 10 [정약용 일본인식]
- Source: 「정약용, 일본 고학파 유학을 연구하다」
- Author/Year: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 Access: contents.history.go.kr
- Reliability: high
- Key point: 정약용이 『논어고금주』에서 인용한 고학파 주석: 이토 진사이 3개소, 오규 소라이 50개소, 다자이 슌다이 148개소.
관련 문서: 에도 고학파 개요 / 요시마스 토도 약징 연구 / 격치고 권1·권2 번역본 연구 정보: DJD 한의학 리서치 시스템 | 15개 하위 질문 | 8회 사상KB 쿼리 + 8회 web_search + 2회 NotebookLM 교차 질의 | 2026-03-26
본 문서는 유학 사상사·의학사·사상의학 문헌의 교차 비교를 통해 작성된 학술 연구 자료입니다. 임상 적용은 반드시 전문 의료인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